7월 초의 짧은 단상. (2013/07/01)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것은 나름 상당한 삶의 연륜을 필요로 한다. 원하는 노선을 운행하는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한다는 짧은 문장으로 끝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냐마는, 버스나 열차의 도착 시간을 잘 맞춰 집에서 출발하는 정확한 시간 맞춤부터 시작해서 바글바글한 승강장, 정류장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몸싸움에서 승리하여 간신히 탑승하면, 혹여 운이 좋아 자리에 앉게 되는 행운을 노려보면서도 에어콘 바람을 최대한 맞을 수 있는 자리로 이동하는 치밀한 자리 선정에 이성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한 - 마치 파라오 같은 - 매너 포즈도 취해줘야 한다. 그게 귀찮으면 가방을 앞으로 메거나 벨트 아래를 가려주는 것도 괜찮겠지만. 뭐, 누구나 다 그렇게 탄다. 출근시간에 이토 준지의 만화 '소용돌이'에 나오는 모습처럼 흉칙하게 얽어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평도 불평이지만, 버스와 열차와 기차와 자동차로 사람을 쉴 새 없이 실어나르는데도 여유가 없을 지경까지 서울의 인구밀도가 대책없이 높아진 상황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어쨌거나 현 직장은 09년부터 다니고 있기에 계속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데,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누구나 탑승하는 시간대가 거의 정해져 있기 나름이고, 따라서 아침에 정류장에서 만나는 분들의 면면이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비록 모르고 이야기 한번 나눠본 적이 없지마는, 그래도 이심전심. 항상 브리프를 들고 여름에도 긴 셔츠를 입던 직장인 아저씨, 긴 머리 새초롬한 표정의 구찌 가방을 든 아가씨. 꽤 긴 머리에 교복 바지 통을 팍 줄인 껄렁껄렁 고등학생. 그 외에도 여럿. 분명히 다들 이 동네 어디쯤 살고 있을텐데. 가끔 누군가 보이지 않는 날도 있다. 늦잠을 잤거나 혹은 일찍 갔을지도. 단지 오래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아주 작은 부분일지언정 정과 감을 느낀다. 처음 이쪽으로 출근할 때는 몇몇 사람들이 정류장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보란듯이 좀 멀리 떨어진 주차장(거기엔 휴지통도 있고, 버스가 오는 것도 잘 보인다)에서 피웠다. 주차장 관리 아저씨한테 인사도 해주고. 어느듯 요즘은 아침에 그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다. 그런 사람들 사이의 감이, 너무 좋다.
요즘은 대중교통을 타며 종이로 된 책을 읽는 사람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출근시간은 책 한권 펼 자리마저 부족한 탓도 있기에, 대부분은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다. 사람은 존경과 감사, 사양과 죄송함의 표시로 하루에 몇 번 고개를 숙일 지 궁금하다. 그보다 훨씬 많은 빈도와 시간을 우리는 스마트폰을 보며 고개를 숙인다. 주위를 둘러보거나 창 밖 경치를 바라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저 많은 사람들이 보는 화면을 누군가 통제한다면, 누군가가 감독하고, 누군가가 조작한다면? '1984' 에서 이야기하던, 벽에 붙은 TV 화면 같은 구식 감시장치는 비교도 되지 않겠다. 바보상자를 뛰어넘은 위대한 발명이 아닌가! 본인이 알아서 보고 알아서 세뇌당하며 알아서 감정을 조절하고 알아서 소통을 없앤다.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민폐라고 여겼던 사람들의 아름다운 정과 감이, 탑승하여 고개를 숙이는 순간 사라진다. 이 얼마나 극명한 대립인지. 물론 우리의 일상이 스마트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아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부재, 아니 소멸에 대해 이토록 과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어떤 국가 기관에서 댓글을 비롯한 정치공작을 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 이런 세상이니만큼 고민해 볼 요량은 충분하다. 온라인으로 이런저런 수단이 먹혀든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무게감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현실 소통의 단절로 인한 것이라면 적지 않은 걱정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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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을 자주, 여러 개 본다. 특히 낮에 일할 때는 점심먹고 난 후에 커피 한잔을 진하게 타와서 의자에 파묻힌 채 천천히 마우스 휠 버튼을 내리며 보는 웹툰의 즐거움이 그렇게 클 수가 없다. N 포탈에서 연재하는 작품 중에 코끼리라는 동물이 제목에 등장하는 만화가 있다. 그 작가분의 예전 작품이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와닿았는지라 요번 작품 역시 열심히 보고 있다. 코끼리라는 제목을 보고 훌륭한 센스라고 생각했는데, 지상에서 가장 강하고 거대한 동물을 사람이 끌어안아야 하는 여러 가지 - 그것이 운명이나, 본인을 둘러싼 환경. 혹 업보나 도그마... 같은 개인이 언젠가는 확립하거나 독립해야 하지만 매우 어려운 - 로 비유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흥미 일변도의 웹툰이 판을 치는 요즘인지라 더욱 그랬을지도. 따뜻하고 감동적인 내용을 부드럽게 풀어나가는 것이 장기인 작가님인데, 연재 중반을 이미 넘어온 만큼 끝까지 건강 유지하며 좋은 내용으로 연재해 주시길 빈다. (물론 그 작가분이 딴지일보 독자일 것 같지는 않다. 무안하게 이 글을 보시는 건 아니겠지.)
따지고 보면 웹툰이라는 장르가 주는 파괴력은 무시무시하다. 상당한 기획, 구성을 요하며 연재의 경우 시간에도 쫓기지만 잘 짜여지고 그려진 웹툰은 누구나 읽기 쉽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도 유리하다. 더구나 접하기도 쉽다. 각 포탈의 웹툰 페이지나 웹툰 전문 사이트를 찾아가면 그만이며, 유료 웹툰도 아직은 크게 부담스러운 정도의 가격도 아니다. 이래저래 좋은 장르이지만 여전히 포탈에서 연재하는 무료 웹툰을 유료로 돌리는 즉시 돈독이 올랐냐는 대량의 항의댓글에 직면해야 하며, 요번 팝핀 사태에서 보듯 그림을 그리는 분들의 재능을 헐값으로 뜯어가는 자들 역시 여전하다. 이것은 물론 만화만이 아니라 글을 비롯한 많은 창작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리라. 생업을 유지하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의 창작을 하시는 분들이면 몰라도, 아직 많은 어린, 혹은 젊은 친구들은 도전만화란에서, 신춘문예나 문예지 혹은 문학 관련 사이트를 두드리며 그림을 그리고 습작을 한다. 일전에 UMC님이 연예계나 방송 관련, 그리고 프로 게이밍 쪽에도 불합리한 대우에 대해서 제보를 받는다고 (그것은 알기 싫다) 한 적이 있었는데, 팝핀 사태를 비롯한 창작인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다뤄준다면 참 좋지 않나 생각한다. 창작의 어려움 이상으로 댓가를 지불하는 것에 대해서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꼭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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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일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충돌하는 경우가 요즘 종종 생긴다. 주로 시스템을 다루는 나는, 네트워크 담당과는 이야기가 잘 맞는 편이다. 그러나 개발자나 기획자와는 왕왕 회의가 길어지는데, 시스템적인 입장에서 짜기 쉽고 사용하기 쉬운 작은 프로세스들을 모아 하나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 옛날 BSD (Unix 운영체제의 한 갈래이다) 관련 번역문서들을 보면, '고전 유닉스식 철학' 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것이 내 입장인 반면, 저쪽은 조금 큰 툴이나 프로그래밍 언어를 투입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낫다고 이야기한다. 가볍게 처리하면 후임자가 배우기 쉽고 관리하기 쉽다고 주장하면 저쪽은 무거운 쪽의 확장성이 유리함을 이야기한다. 시스템상에서 전자가 아무래도 더 가벼우니 부하가 적다는 의견에, 반대로 시스템의 스펙이 엄청나게 좋아지는 요즘엔 오히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둘 다 틀린 의견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더 효율이 좋은 쪽으로 진행하면 되겠지만. 거기에 보안이라는 문제와 백업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그저 좌충우돌. 팀장님의 머리는 그저 복잡해지겠지.
회사의 보안 담당자가 자주 이야기한다. '인간이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보안상으로는 강력하다' 이거 참 명문이다. 보안 솔루션을 이중 삼중으로 투입하고, 사용자의 권한을 제한하는 등의 온갖 조치를 하면 할수록 아무래도 안전할 수밖에 없다. 그뤟지만 바깥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기획자나 UX (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의 경우엔 최대한 유저들이 쉽고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쓰는 걸 생각하면, 그리고 안과 바깥이 자주 회의가 길어지고 다툼이 생기고 담배를 같이 피울 일이 많아지며 소주잔을 기울일 일도 늘어난다는 걸 생각하면, (물론 업무가 많이 세분화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은 좀 다를 것이다.) IT의 즐거운 점은 바로 이 개인적 가치관들의 충돌이 더 나은 기획과 기술, 디자인 등등을 요구하게 되고 그러면서 더 좋은 서비스로 발전해나간다는 것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마치 헤겔의 변증법이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덕분에 배울 것도, 알아야 할 것이 앞으로도 넘친다는 것에 안도감과 피곤함을 동시에 느낀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