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봄.
Mithril
2011. 12. 29. 08:12
아침에 버스를 타면,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 - 평소에 내가 타는 시간보다 20분은 일찍 타야 자리에 앉을 수가 있다. 따라서, 내가 앉아가는 일은 거의 없다 - 맨 뒷자리에 앉을 기회가 생기는 날이 있다. 고등학교때부터 지하철을 타고 통학을 했던 내 기억에 따르면, 거의 승객들은 신문이나 잡지, 책을 보거나. 여럿일 경우 수다를 떨고, 몇몇은 워크맨이나 시디플레이어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듣지만, 가장 많은 유형은 오늘 정말 운이 좋게 자리에 앉은 나처럼,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면서 예쁜 아가씨라도 혹 있는지, (물론 훤칠한 남자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게다) 혹은 사람들의 표정이나 옷차림이 어떤지를 딱히 무슨 목적없이 둘러보는 (그것도 멍하게)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물론 손잡이에 몸을 맡기고, 온갖 잡생각과 망상에 가득 차 있는 것도 포함해서.
하지만 요즘 버스 안에서 주변을 둘러봐야, 대부분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사람이 반이고, 대부분 엄지손가락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여대고 있다. 게임을 하는 사람, 수다를 떠는 사람, 팟캐스트를 듣는 사람. 여기에는 물론 SNS을 이용해서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의 끈을 손가락 끝에 감고, 시사와 현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포함될 것이며, 페이퍼백이 불편하니 스마트폰으로 책을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 단지 스타일이 바뀐 것일 뿐, 지하철이나 버스에 탄 사람들은 다 똑같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다는 것. 그것조차도 똑같다.
사람들의 얼굴은 지금도 대부분 춥고 우울하다. 매체에서 다루는 기사들은 더욱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다 못해 목숨을 끊는 아이들.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들의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서 회사에서 내쫓기다시피 한 노동자들, 국민 모두에게 일련번호도 모자라 무려 RFID를 부여해 한국을 마치 '오세아니아' 처럼 만드려는 정부, - 물론 그들이 '당' 처럼 치밀할리 없지만, 어쨌거나 그 사업이 승인되면 누가 막대한 이득을 챙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유비쿼터스에 대한 인문학적 고뇌가 따랐는지는 애초에 기대도 할수 없겠지만 - 기득권자를 대변하는 못된 지도자의 비리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역겨운 과정을 거쳐 끝내 감옥에 쳐넣어버린 사법부. 그리고 어떻게든 무마시키고 덮으려고 터지는, 이름도 잘 모르겠는 연예인들의 스캔들 기사. 누가 연애를 하건 결혼을 하건 이혼을 하건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정작 우리가 관심을 보내야 할 이슈는 너무나도 많고, 무엇보다 난 지금 솔로란 말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봄이 오길 바란다. 추운 겨울, 추운 소식이 가고 좋은, 밝은 소식만 우리에게 들려왔으면 하는, 혹은 억압과 독재 밑에서 신음하다 결국 민주주의가, 자유가 우리에게 오기를... 하는 상징적 의미로서 '봄' 이란 단어가 쓰여진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벌써 수십년 전부터, 지금 우리는 봄처럼 지내고 있지만 사실은 겨울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총칼로, 돈으로, 그리고 매체로 우리의 눈과 귀를 막고 끝끝내 봄을 가장한 겨울을 유지하려는 자들. 그런 자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들의 힘은 너무 강하다.
오늘이 12월 29일. 또다른 새해가 며칠 후다. 우리는 내년에도, 또다시 봄을 가장한 겨울을 겪게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이 구절로라도 땜빵하고 싶다.
우리가 딱히 아프거나, 배고프거나, 공포에 떨고 있거나, 감옥 또는 행락지에 갇혀 있지 않은 한, 봄은 여전히 봄인 것이다. 공장엔 원자탄이 쌓여가고, 도시엔 경찰이 어슬렁거리고, 확성기엔 거짓말이 넘쳐흐른다 해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아무리 못마땅한들, 독재자도 관료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 조지 오웰, '두꺼비 단상'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