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8.16 28. (13/08/07)
2013. 8. 16. 18:40


 - 소설의 내용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 있을 겁니다.)


28.jpg 



  작가들은 흔히 절망적인, 좌절과 공포로 가득찬 공간을 상상하며 창작을 한다. 독자들의 갈등은 영웅의 등장으로 해소되었다.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고도 매끈하게, 상처 하나 없는. 그러나 사람들의 사고 수준과 깨달음의 격은 점점 높아져 갔다. 그러자 영리한 작가들은 또다시 영웅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결하되 만신창이가 된. 극한의 역경을 이겨낸 위대한 인간상을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영웅이라는 키워드에 지치기 시작했다. 수많은 창작의 주제와 소재가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가정한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질문을 던져 보았으리라. 영웅은 존재하거나 존재했는가? 현실이 서사보다 더 잔인하고 비열해졌는데,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얻고자 한들 누가 답을 줄 것인가.



  작가의 긴 준비기간 덕에, 묘사는 놀라우리만큼 차갑다. '화양시' 라 일컬어진 공간 속에서 - 물론 가상의 도시이다, 하지만 수도권이고, 대략의 위치가 짧게나마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아 대략 모델을 짐작할 수 있다 -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등장한다.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전염되는 치사율 100%의 괴질. 병원은 순식간에 환자로 가득 차고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들마저 환자가 되고 끝내는 죽어간다. 다급해진 정부는 화양시를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도록 봉쇄한다. 좌절에 가득찬 사람들의 혼란함이 검은 안개가 되어 시 전체를 새까맣게 메운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낀 몇몇 시점이, 다음 질문의 해답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아마 책을 손에 집은 당신도 찾게 될 것이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에게, 구원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시점을 이루는 인물들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것은 체질상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상황을 완전히 해결할 능력이 없다. 이미 한 번 살아남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가족과도 같은 개들을 내동댕이칠 수밖에 없었기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유기견들을 열심히 보살피는 재형이나, 충실한 119 구조대원으로서 동분서주하는 기주, 큰 혼란 가운데서도 간호사의 본분을 다하는 수진... 모두 전염병이 퍼진 상황에서 각자의 할 일에 매달리고 또 매달렸지만, 그들은 단지 끈이 떨어진 연이었을 뿐이다. 단지 본분을 다 했다는 것만으로, 사람은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더욱 몸부림쳤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그 와중에 비극은 인간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인간과 동물이 모두 감염되는 전염병이라는 보도가 나가자, 개와 고양이들이 원흉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두 동물은 끝없이 산 채로 구덩이에 파묻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동물을 죽이거나, 내버리거나, 혹은 재형의 보호센터 앞에 갖다놓았다. 현실과 오히려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지금도 SNS나 수많은 반려동물 커뮤니티에는 너무 커서, 혹 발정기라는 이유로, 아니면 동물을 키울 수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해서... 등등 막대한 양의 핑계가 쏟아지고 있다. 작가는 유독, 이 부분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끝내 화양시에 거주한 20만이 넘는 사람과 동물들 중에 운이 정말로 좋았던 몇몇을 제외하고 구원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야기를 이루던 시점들의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의 처절한 분투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고 모두 스스로가 맺은 것조차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 애초에 작가는 구원이나 영웅적 희생이라는 위대한 정신적 성취를 독자들에게 주입시킬 생각이 없었다. 구원이라는 것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책을 전부 읽은 다음에 난 위의 질문에 분명한 답을 얻었다. 작가가 하고픈 말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난 답을 얻었다. 여러분도 책을 구입하거나 혹 서점에서 읽게 된다면, 어떤 방향에서건 명확한 답이 주어질 거라 믿는다. 그만큼 작가가 던진 메시지는 강렬하고 또한 탁월했다. 오랜만에,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당신이 벼랑 끝에 몰렸다면, 구원 이전에 인간성을 찾으시오.

우선 인간이 되시오.







p.s 책을 덮을때는 쌩쌩했는데 뭔가 쓰면 졸린 이 아쉬움. 새벽이라 그런거겠죠. 띄어쓰기좀 수정하려다 글씨 크기좀 키웠어요. 밤을 새서 그런지 눈이 뻑뻑 ㅠㅠ

'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전변태. (14/05/24)  (2) 2014.05.24
정동 찬가. (2014/01/07)  (0) 2014.01.21
7월 초의 짧은 단상. (2013/07/01)  (0) 2013.07.06
톱니바퀴. (2013/05/28)  (0) 2013.07.06
표정 없음. (2013/05/16)  (0) 2013.07.06
Posted by Mithr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