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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01.21 정동 찬가. (2014/01/07)
  3. 2013.08.16 28. (13/08/07)
  4. 2013.07.06 7월 초의 짧은 단상. (2013/07/01)
  5. 2013.07.06 톱니바퀴. (2013/05/28)
  6. 2013.07.06 표정 없음. (2013/05/16)
  7. 2013.04.03 삼월 말의 단상. (04/01)
  8. 2013.04.03 술. (3/27)
2014. 5. 24. 00:44




나비는 비유컨대 인간과 묘하게 닮은 생물이다. 애벌레는 비좁은 시야에 행동반경도 멀지 않다. 육체의 성장을 위해 먹고 또 먹는 과정에서 성장통과 비교될 허물벗기를 거듭한다. 성충이 되기 위해 전신전령을 다해 자신을 둘러싼 껍데기를 찢으려 애를 쓴다. 끝없는 인고를 이겨내고 스스로를 둘러싼 벽을 부수고 나와 축축한 날개를 말리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나비는 비로소 세상의 모든 것을 본다. 도를 깨달은 성인의 눈으로.


그저 주어진 환경과 일상에 순응하고 주위를 둘러보지 않으며 불의에 분노할 줄 모른다면, 비록 성장하여 나이를 먹었더라도 그는 그저 애벌레다. 허물만 연거푸 벗었을 뿐, 그는 그저 몸집만 커진 거대한 애벌레에 불과한 것이다. 완전히 성장한 인간이 되려면 고뇌하고 분노해야 한다. 물론 인간이기에 나비가 훨훨 날기 위해 쏟는 노력 이상을 퍼부어야 함은 마땅한 것이다.


다행히도 인간의 완전변태를 돕기 위해서 이외수 작가가 단편집을 내놓았다. 번데기를 찢기 위해 고군분투중인 이 시대의 몸만 어른인 아이들을 위해. 원칙 없는 법, 물질이 최우선시되는 풍조, 아집과 편견, 마음 없는 예술. 그 외에도 여러 경계하고 고민해야 될 문제들을 "소나무에는 왜 소가 열리지 않을까", "해우석", "새순", "파로호" 등 10편의 단편에 담아냈다. 노 작가는 이번에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특유의 예민한 감수성과 역설, 환상적이면서도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둘러싼 번데기 껍질을 찢는데 도움될 날카로운 칼날과 에너지를 마치 돌직구처럼 선사한다. 물론 구도와 깨달음, 반전과 통쾌함 등 소설적인 요소들 역시 듬뿍 책 속에서 맛볼 수 있으니 기대해 볼 일이며, 탐석과 낚시라던지 교도소의 생생한 풍경 등 다양한 인물과 장소의 등장 역시 재밋거리다. 훨훨 날고픈 독자들은 9년 만에 선물받은 작가의 단편집을 부디 천천히 읽으시라. 언제 또 돌직구가 날아올 지 모르니.



해냄. 239p.








p.s 나온지 두달이 다 되었지만 두 번이나 완독하고 나서야 간신히 포스팅할 기분이 생겼다. 사실 글은 커녕 업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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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hril
2014. 1. 21. 11:10

1.


 이직 후에 연봉이 조금 오른 것 빼고 뭐가 좋아졌냐고 물으면, 난 보통 주말에 (최소한 일요일 정도는) 마음편히 쉴 수 있는 점이 좋다고 답하곤 했다. 12월 22일의 오후도 그 좋은 점을 십분 활용해, 전날 절친들과 태안으로 캠핑을 가서 석화와 가리비 등을 두 망태기나 사다가 실컷 먹고 술도 잔뜩 마신 뒤, (정신적인) 스태미너를 충전하고 석유곤로에 전기장판까지 깐 채로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따뜻하여 억울한 기분이었다) 텐트에서 죽은 듯 자고 일어나 서울로 올라오던 참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뭔가 충전은 제대로 한 것 같았지만 역시 캠핑장의 찬바람이라던지 전날 과하게 마신 술의 영향으로 피곤했고 머리가 아팠다. 오후 내내 쉬면 내일 업무엔 지장이 없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이불 속에 파고든 채 트위터를 켜고 타임라인을 훑어보던 그 시점에서, 나는 그 날 오후부터 이렇게 오랜만에 딴지에 글까지 남길 정도로 (물론 딴지에 꾸준히 오긴 하지만, 회사와 고객에게 줄 하잘것없는 보고서 외에 요즘 글이란 걸 써본 기억이 없다) 머릿속에 각인될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의 일이 늘상 그러하지만.


 트위터는 온통 시끄러웠다. 수배중인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경향신문사 사옥으로 체포조가 투입되었으며, 수많은 의경들도 주변에서 인원을 통제하려 한다는 내용이 트위터를 꽉 메웠다. - 물론 내 타임라인에서만 시끄러웠을지도 모른다 - 이런저런 일로 집회에 간간히 참여해왔지만 그 날은 너무 피곤했고 더구나 일요일이었다. 괜히 불금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것이 아닐진대, 일요일의 경찰 투입은 윗선의 판단으로서도 나름 잘 세운 계획이라 여겼을 게다. - 한번 본보기로 크게 때려잡아야 하는데, 집에서 쉬기 바쁜 일요일에 누가 나오겠어? 나와봐야 소수겠지 - 라는 생각도 약간 들어있었겠지만, 대략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리고 그 틀린 점을 교훈삼아, 28일의 집회에선 훨씬 더 많은 의경과 차량이 투입된 것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쨌거나 타임라인에는 - 딴지스들을 비롯하여 - 오전부터 출발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고 나 역시 고민이 생기면 보통은 실행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무슨 집회에 참여하는 게 대단한 준비와 의지를 요하는 것도 아닐진대, 가서 손이라도 보태야 하지 않겠냐는 평소대로의 소신을 향해 뜻이 기울었고 적당히 씻은 뒤 지저분해져도 되는 복장을 골라 밖으로 나왔다. (대문 밖을 나선 순간 후회한 것은, 바로 장갑을 챙겨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끔은 궁금하다. 날이 좋을 때도 아니고 매우 춥거나 더운 날,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집회나 시위에 참여할까? 따지고 보면 참여를 위한 거창한 명분을 만들어내는 것이나, 그 명분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우스운 짓이다. 물론 참여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도 우습다. 그리고 그 우스운 사람들의 상당수가 SNS상에서 잘나가는 척 하는 (진짜 잘나갈수도 있고) 사람들인 것이 결정적으로 우스운 점이다. - 사실은 이런 사람들을 우습다고 쓰는 나도 우스운 자이리 - 쿨한 척 말고, 윽박지르지도 말고 그냥 손 하나 보태달라는 심정만 전하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나름의 슬퍼하고 기뻐하는 방법이 있듯이 누구나 나름의 - 여기선 시국에 대한, 정치에 대한 - 생각이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생각이 난 정치고 뭐고 관심없어, 라면 듣는 내 입장에선 조금 슬픈 일이겠지만.





2.


 떠올리건대 그 시점에선 트위터만 펄펄 달구어졌을 뿐 실시간 검색어에는 아직 경향신문사라던지 철도노조 같은 단어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덕분인지 일요일의 8호선과 분당선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고, 나만 불편함과 분노의 오오라를 풍기며 객실 한 귀퉁이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분당선을 타고 왕십리로 가서 5호선으로 환승하여 서대문역에 도착했다. 오가는 사람이 꽤 있었다. 난 우선 역 안의 편의점에 들러 담배와 물을 샀다. 혹 요즘같이 추울 때 집회에 참여하시게 된다면, 방한에 충분히 대비하시고 핸드폰이나 카메라의 예비 배터리와 마실것, 그리고 흡연자라면 여분의 담배를 꼭 챙겨야 불편함이 덜하다. 물론 요즘 흔히 구할 수 있는 3단으로 접을 수 있는 얇은 방석과 핫팩까지 있으면 더할 나위 없고. 참, 미리 화장실도 들렸다 가시길.


 서대문역 밖으로 나왔을 땐 경찰 측에서 거리가 떠나갈 듯한 소리로 경고방송중이었다. 난 어디 경찰서 누구고 너희들은 지금 불법 집회중이며 물러나지 않으면 이러저러 하겠다~~ 라는, 시위나 집회에 오면 흔히 들을 수 있는 경고방송. 맞불이라도 놓듯 철도노조 측에서 준비한 듯한 차량의 방송이 이어졌다. 하지만 내가 정작 놀란 것은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숫자였다. 지나가다가 무슨일인가 싶어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나처럼 집회에 참여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지만, TV에서도 포탈에서도 관련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시점인데 (물론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인터넷 뉴스 페이지에서야 오전부터 다루었겠지만, 일부러 뉴스 페이지에 접속하여 기사를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 궁금했다. 나이대도 다양했고. 다시 생각하면,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옳다. 사람들에게 알려질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기습은 가장 현명한 전술이다.


 이미 주변에 차량을 절묘하게 배치해서 경향신문사로 가는 길은 막혔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얼마나 많은 차량과 인원이 투입되었는지 나로선 알 수 없었기에, 어떻게든 사옥 쪽으로 가는 길을 찾자 싶어서 두리번거리며 의경들이 없을 만한 길을 찾으며 헤맨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여기저기 가보다가 인파를 헤치고 청양빌딩 앞에 다다르자, 도로로 나갈 수 없게 닭장차들을 줄지어 대놓고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도록 방패를 든 채 몇 줄로 빼곡하게 보도를 채운 의경들이 시야에 보였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늦게 온 자신을 한탄하며.


 다음날 보도된 내용들을 보면 정동에 몇 명이 왔는지 다들 나름의 추산으로 적어놓았는데, 널찍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라면 기준이 되는 면적에 몇 명이 서 있는지 세고, 그걸 전체 면적에 대비해서 계산하면 얼추 맞겠지만 이 날은 어느 누구도 정확한 숫자를 내긴 어려웠으리라. 경향신문사로 가는 길마다 빼곡하게 서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계산법으로 세기도 어려운 상태였고 더구나 일요일이라 건물들 문을 대부분 닫아 위에서 내려다보기도 힘들었으며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넷상에 관련 소식이 전파되고 그에 따라 참여하는 사람들도 꾸준히 늘어나 총 몇 명이 참여했는지 가늠한다는 건 무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거나 난 다른 길로 가 봐야 상황은 비슷하겠구나 싶었고 사람들은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막힌 채로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예측은 정확했다) 우선 숨이나 좀 돌리자 싶은 마음에 도로가로 물러나 닭장차 옆에서 담배를 물었다. 체포영장만 가지고 무려 노동자들의 성지이자 신문사의 사옥으로 경찰이 투입된 유례없는 이 상황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3.


 젊은 친구들이 의경들의 코앞에서 웅성거렸다. 그들이 쓰는 단어를 유심히 들었다. 짐작컨대 대학 동아리 정도로 여겨졌는데, 그들의 대화는 의외로 유쾌했고 때로는 비장했다. 하지만 초조해 보였다. 생각같아서야 눈앞에 쌓인 벽을 뚫고 경향신문사로 달려가고 싶었겠지만, 대부분은 알지 않을까? 정규 훈련을 받은 의경은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간에 대단히 탄탄하다. 반대쪽에서 길을 터달라며 지나오는 분들이 여럿 있었다. 대부분은 왜 갑자기 이 서울의 중심부에 시민들과 의경들이 바글바글한지 알다가도 모를 영문이라는 표정들이었다. 몇몇 어르신들이 앞으로 나서 윗선을 불렀다. 왜 여길 막아서 사람들을 못 지나가게 하는지 물었다. 저쪽에서 나이가 좀 되보이는 분이 나왔다. 기동대장쯤 되려나. 듣기에는 원론적인 대사뿐이었다. 불법집회라는 단어가 몇 번 나왔고 어르신들과 다투다가, 그는 다시 벽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


 트위터를 뛰어넘어 포탈에서까지 관련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내용이 우리가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견을 가지고 쓴 것임은 자명했다. 지도부는 불법파업을 주도해 시민들에게 거대한 불편을 끼쳤고 체포는 정당하다. 그 반대쪽은 어떨까. 민주노총이 들어서 있는 언론사 사옥에 체포영장만으로 수백의 체포조가 투입되었고 그들은 건물의 집기를 모조리 박살내는 중이었다. 소방관들을 투입해서 유리를 깼다는 내용도 있었다. 체포조는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한 층 한 층을 점령하고 있었고, 그것은 트위터를 통해서 순식간에 전파되었다. 사람들은 초조해졌고 결국 누군가 힘으로 여길 뚫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목소리에 동참할 사람이 많지는 않아보였다. 내 감에 따른 것이지만, 오전에 이미 경향신문사로 가신 분들이 아닌 나중에 합류한 시민들은 기본적으로 스스로의 의분에 이곳에 왔으되, 공권력에 부딪히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이 보였기 때문이었고, 현장엔 여성분들도 상당수 계셨기에 자칫 힘으로 밀어붙이다 혹여 부상자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으리라.


 그러다 건물을 넘어 간신히 상층부만 보이는 경향신문사 사옥에서, 창밖으로 흰색 종이를 뿌리는 모습이 보였다. 내용은 뉴스 기사와 SNS에 널리 퍼진 그대로이다. 물론 여기까지 날아오진 않았지만. 결국 몇몇 사람들의 구령에 맞춰 사람들은 벽을 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의경들과 가까운 위치였기에 사람들을 도와 앞 사람의 등을 밀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뒤에서 달려나왔다. 몇 걸음쯤 전진했을까. 의경들도 특유의 구령소리에 맞춰 방패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순간 내 눈에 뭔가 날아들었고 난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늦었다.


 예봉을 순식간에 뒤흔든 것은 다름아닌 최루액이었다. 캡사이신은 고추의 매운 성분이라 했던가. 눈가를 포함한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나는 한동안 눈을 뜰 수 없었고, 팔로 감은 눈을 꾹 누르며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비틀비틀하는 와중에 주위에선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며 지르는 비명이 들렸다. 다행히도 후방에 있던 분들은 최루액이 뿌려지는 것을 보았는지, 뒤로 물러서며 넘어진 사람들을 일으켜주었다. 군대에서 경험해 본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물로 씻어내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땐 물이 없었다. 마시려고 가져온 물도 이미 다 마신 상태였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시력은 회복했지만 얼굴은 매우 따가웠다. 다들 머리를 흔들며 아까의 위치로 후퇴했다. 결국 한 치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다시 어르신들이 나서서 시민들에게 최루액을 쏜 것에 대해 소리높여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몇 번 보았지만, 그들은 최루액을 쏘겠다고 경고방송을 한 일이 없으며, 곡사로 쏜 것도 아니고 시민들의 얼굴을 향해 직사로 쏘았다. 몇몇 시민들은 분노에 차 욕설도 퍼부었다. 아까와 달리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머리 위에서 채증 카메라의 렌즈만 번쩍거렸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여럿이 도로가로 나와 담배를 물고 어떻게든 아까 맞은 최루액으로 인한 따가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사람들은 더 늘어났고, 이젠 돌아가려 해도 많은 인파를 헤쳐야 할 정도가 되었다. 하나둘씩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내 옆에 있던, 아리따운 아가씨가 (아리따워 보였다) 말없이 종이컵과 초를 내밀었다. 냉큼 받아들어 초를 켰다. 난 추위를 잘 타지 않는 편이지만, 손만큼은 그날 너무 시려워서 하다못해 촛불이라도 쬐고 싶었던 기분을 고백해야겠다.


 이후에 두 번 정도 더 뚫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히 최루액에 무산되었다. 더 이상 뚫으려는 시도가 무색한 것이, 집회에 오신 외국 여성분을 포함한 많은 학생들과 나이드신 분들이 넘어지고 어떤 학생은 안경이 깨지기도 하는 등 더 이상의 사고는 막아야 했으며 이미 체포조는 민주노총 사무실에 다다르기까지 몇 층 남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와 사람들의 힘이 빠졌기 때문이다. 철도노조에서 몇몇 분이 이쪽으로 와주셨다. 박근혜 물러나라, 민영화를 막아내자. 등등의 구호를 외치고 몇몇 젊은이는 자유발언 형식으로 길가의 건물 출입구 계단 위에서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기도 했다. 제안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했다. 어둠이 거리를 완전히 메웠다. 아마 그때쯤이 저녁 8시가 넘은 걸로 기억한다.


 공포가 사람들에게 더해지고 더해지면 더 강한 공포가 오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공포에 무디어진다. 공권력과 부딪히는 것에 부담스러워하던 사람들은 시민을 향해 직격으로 쏘아지는 최루액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처음에는 두려웠을지 몰라도 계속되면 최루액 따위,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상황을 뒤집을 정도의 참여자는 모이지 않았고 시끄러웠던 인터넷과 SNS는 현실에 대해서 우리에게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주는 데에는 서툴렀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화를 내며 지나가는 사람들 역시 존재했다. (한 노인분은 빨갱이들이 모였다며 마구 욕을 하며 지나가기도 했다) 집회에 왔다고 했더니 그딴 짓거리를 해도 세상 안 바뀌니까 종로에서 술이나 마시는게 어떠냐는 친구도 우리 옆에 얼마든지 있다. (오후에 전화왔던 내 친구가 그랬다. 대충 대답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공포가 얼마나 더 크고 깊게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어야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디어질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그 날 나는 좀처럼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웠다.



4.


 대치하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이번엔 조급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도부는 이미 새벽에 사옥을 빠져나갔으며, 체포조는 건물 곳곳을 수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대변인의 트윗이 빠른 속도로 리트윗되었다. 형세 관측이 빠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판단이 비슷해지기까진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결국은 지도부 중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사람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의경 역시 철수했고 사람들은 괜히 근처를 서성거리며 웃고 떠들었다. 나 역시 괜히 즐거운 마음에 일부러 주변을 걷고 걷다가 집으로 향했다. 사실은 술이나 한 잔 마실까 했지만, 일요일이었고 주위엔 아는 사람도 없었으며 피로도가 극한에 다다른 시점이었다.


 결과적으로 크게 빅엿을 선사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 이 날 경찰이 보여준 촌극은, 어떤 경찰이 맥심 커피믹스를 훔쳐갔다는 이야기가 더해져 사람들에게 크나큰 조소거리가 되었고, 거기에 시민들에게 선보인 최루액 직분사 터보 엔진과 경향신문사 사옥을 다 때려부순 만행까지 포함하여 그들이 저지른 불법침입의 책임을 모두 합쳐 공은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오는 듯 보였다. 거기에 28일날 총파업과 대규모 집회까지 결의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의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크게 비웃음을 샀던 그 사람들의 의지가 훨씬 확고하고 또한 집요했다. 28일의 대규모 집회는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을 경찰과 의경들이 철저하게 둘러싸는 형국으로 진행되었으며, 뒤늦게 참가한 시민들이 합세해 다시 도로를 메우고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앞까지 와서 한 자리에 모이는 것조차 1만명이 넘는 의경과 수많은 닭장차들, 거기에 폴리스라인 (엄청 큰 바리케이트였다) 까지 설치한 그들의 초 강경대응으로 인해 유기적인 집회로 이어지지 못했다. 난 그날도 참가했지만 오히려 큰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쉬운 일이었다. 거기에 이러저러한 어떤 이유가 있겠지만, 며칠 안가서 철도노조는 파업을 철회했다.


 이 두 번의 집회에서, 적어도 비분에 차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시민들이 많아진다는 것이 분명 우리 눈에 보이고 있으며, 일련의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를 비롯해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또한 확실해 보인다. 그래봐야 주위에 변해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반응 역시 적지 않지만, 변화는 분명 보인다. 사람들은 느끼고 있고 조금씩 행동에 옮기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정부가 얌전하게 물러날 리도 없고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리도, 즉 국민에 뜻에 맞는 행동을 하길 바라는 것은 냉정하게 생각해 무리이다. 역대 어느 불법, 독재정권이 국민이 요구하는 것만으로 물러났던가. 아마도 많은 고통을 부를 것이다. 때로는 피를 부를 것이다. 고통과 피를 흘리는 당사자가 나라면, 혹 당신이라면 받아들이겠는가? 어느 누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느 누가 다수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고통과 피를 강요할 것인가.


 그러나 내 삶에서, 이 천천히 진행되는 변화의 물결의 끝이 보인다면 그 때쯤엔 12월 22일, 정동의 풍경에 바치는 찬가를 부를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적어도 뭔가를 해야 되겠다는 것만큼은 그 날부터 확실해졌다. 그게 참여건 후원이건, 무엇이건 간에.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다들 뭔가 하자.

실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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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hril
2013. 8. 16. 18:40


 - 소설의 내용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 있을 겁니다.)


28.jpg 



  작가들은 흔히 절망적인, 좌절과 공포로 가득찬 공간을 상상하며 창작을 한다. 독자들의 갈등은 영웅의 등장으로 해소되었다.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고도 매끈하게, 상처 하나 없는. 그러나 사람들의 사고 수준과 깨달음의 격은 점점 높아져 갔다. 그러자 영리한 작가들은 또다시 영웅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결하되 만신창이가 된. 극한의 역경을 이겨낸 위대한 인간상을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영웅이라는 키워드에 지치기 시작했다. 수많은 창작의 주제와 소재가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가정한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질문을 던져 보았으리라. 영웅은 존재하거나 존재했는가? 현실이 서사보다 더 잔인하고 비열해졌는데,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얻고자 한들 누가 답을 줄 것인가.



  작가의 긴 준비기간 덕에, 묘사는 놀라우리만큼 차갑다. '화양시' 라 일컬어진 공간 속에서 - 물론 가상의 도시이다, 하지만 수도권이고, 대략의 위치가 짧게나마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아 대략 모델을 짐작할 수 있다 -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등장한다.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전염되는 치사율 100%의 괴질. 병원은 순식간에 환자로 가득 차고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들마저 환자가 되고 끝내는 죽어간다. 다급해진 정부는 화양시를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도록 봉쇄한다. 좌절에 가득찬 사람들의 혼란함이 검은 안개가 되어 시 전체를 새까맣게 메운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낀 몇몇 시점이, 다음 질문의 해답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아마 책을 손에 집은 당신도 찾게 될 것이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에게, 구원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시점을 이루는 인물들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것은 체질상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상황을 완전히 해결할 능력이 없다. 이미 한 번 살아남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가족과도 같은 개들을 내동댕이칠 수밖에 없었기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유기견들을 열심히 보살피는 재형이나, 충실한 119 구조대원으로서 동분서주하는 기주, 큰 혼란 가운데서도 간호사의 본분을 다하는 수진... 모두 전염병이 퍼진 상황에서 각자의 할 일에 매달리고 또 매달렸지만, 그들은 단지 끈이 떨어진 연이었을 뿐이다. 단지 본분을 다 했다는 것만으로, 사람은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더욱 몸부림쳤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그 와중에 비극은 인간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인간과 동물이 모두 감염되는 전염병이라는 보도가 나가자, 개와 고양이들이 원흉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두 동물은 끝없이 산 채로 구덩이에 파묻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동물을 죽이거나, 내버리거나, 혹은 재형의 보호센터 앞에 갖다놓았다. 현실과 오히려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지금도 SNS나 수많은 반려동물 커뮤니티에는 너무 커서, 혹 발정기라는 이유로, 아니면 동물을 키울 수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해서... 등등 막대한 양의 핑계가 쏟아지고 있다. 작가는 유독, 이 부분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끝내 화양시에 거주한 20만이 넘는 사람과 동물들 중에 운이 정말로 좋았던 몇몇을 제외하고 구원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야기를 이루던 시점들의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의 처절한 분투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고 모두 스스로가 맺은 것조차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 애초에 작가는 구원이나 영웅적 희생이라는 위대한 정신적 성취를 독자들에게 주입시킬 생각이 없었다. 구원이라는 것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책을 전부 읽은 다음에 난 위의 질문에 분명한 답을 얻었다. 작가가 하고픈 말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난 답을 얻었다. 여러분도 책을 구입하거나 혹 서점에서 읽게 된다면, 어떤 방향에서건 명확한 답이 주어질 거라 믿는다. 그만큼 작가가 던진 메시지는 강렬하고 또한 탁월했다. 오랜만에,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당신이 벼랑 끝에 몰렸다면, 구원 이전에 인간성을 찾으시오.

우선 인간이 되시오.







p.s 책을 덮을때는 쌩쌩했는데 뭔가 쓰면 졸린 이 아쉬움. 새벽이라 그런거겠죠. 띄어쓰기좀 수정하려다 글씨 크기좀 키웠어요. 밤을 새서 그런지 눈이 뻑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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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hril
2013. 7. 6. 07:22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것은 나름 상당한 삶의 연륜을 필요로 한다. 원하는 노선을 운행하는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한다는 짧은 문장으로 끝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냐마는, 버스나 열차의 도착 시간을 잘 맞춰 집에서 출발하는 정확한 시간 맞춤부터 시작해서 바글바글한 승강장, 정류장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몸싸움에서 승리하여 간신히 탑승하면, 혹여 운이 좋아 자리에 앉게 되는 행운을 노려보면서도 에어콘 바람을 최대한 맞을 수 있는 자리로 이동하는 치밀한 자리 선정에 이성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한 - 마치 파라오 같은 - 매너 포즈도 취해줘야 한다. 그게 귀찮으면 가방을 앞으로 메거나 벨트 아래를 가려주는 것도 괜찮겠지만. 뭐, 누구나 다 그렇게 탄다. 출근시간에 이토 준지의 만화 '소용돌이'에 나오는 모습처럼 흉칙하게 얽어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평도 불평이지만, 버스와 열차와 기차와 자동차로 사람을 쉴 새 없이 실어나르는데도 여유가 없을 지경까지 서울의 인구밀도가 대책없이 높아진 상황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어쨌거나 현 직장은 09년부터 다니고 있기에 계속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데,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누구나 탑승하는 시간대가 거의 정해져 있기 나름이고, 따라서 아침에 정류장에서 만나는 분들의 면면이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비록 모르고 이야기 한번 나눠본 적이 없지마는, 그래도 이심전심. 항상 브리프를 들고 여름에도 긴 셔츠를 입던 직장인 아저씨, 긴 머리 새초롬한 표정의 구찌 가방을 든 아가씨. 꽤 긴 머리에 교복 바지 통을 팍 줄인 껄렁껄렁 고등학생. 그 외에도 여럿. 분명히 다들 이 동네 어디쯤 살고 있을텐데. 가끔 누군가 보이지 않는 날도 있다. 늦잠을 잤거나 혹은 일찍 갔을지도. 단지 오래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아주 작은 부분일지언정 정과 감을 느낀다. 처음 이쪽으로 출근할 때는 몇몇 사람들이 정류장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보란듯이 좀 멀리 떨어진 주차장(거기엔 휴지통도 있고, 버스가 오는 것도 잘 보인다)에서 피웠다. 주차장 관리 아저씨한테 인사도 해주고. 어느듯 요즘은 아침에 그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다. 그런 사람들 사이의 감이, 너무 좋다.


 요즘은 대중교통을 타며 종이로 된 책을 읽는 사람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출근시간은 책 한권 펼 자리마저 부족한 탓도 있기에, 대부분은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다. 사람은 존경과 감사, 사양과 죄송함의 표시로 하루에 몇 번 고개를 숙일 지 궁금하다. 그보다 훨씬 많은 빈도와 시간을 우리는 스마트폰을 보며 고개를 숙인다. 주위를 둘러보거나 창 밖 경치를 바라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저 많은 사람들이 보는 화면을 누군가 통제한다면, 누군가가 감독하고, 누군가가 조작한다면? '1984' 에서 이야기하던, 벽에 붙은 TV 화면 같은 구식 감시장치는 비교도 되지 않겠다. 바보상자를 뛰어넘은 위대한 발명이 아닌가! 본인이 알아서 보고 알아서 세뇌당하며 알아서 감정을 조절하고 알아서 소통을 없앤다.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민폐라고 여겼던 사람들의 아름다운 정과 감이, 탑승하여 고개를 숙이는 순간 사라진다. 이 얼마나 극명한 대립인지. 물론 우리의 일상이 스마트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아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부재, 아니 소멸에 대해 이토록 과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어떤 국가 기관에서 댓글을 비롯한 정치공작을 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 이런 세상이니만큼 고민해 볼 요량은 충분하다. 온라인으로 이런저런 수단이 먹혀든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무게감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현실 소통의 단절로 인한 것이라면 적지 않은 걱정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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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툰을 자주, 여러 개 본다. 특히 낮에 일할 때는 점심먹고 난 후에 커피 한잔을 진하게 타와서 의자에 파묻힌 채 천천히 마우스 휠 버튼을 내리며 보는 웹툰의 즐거움이 그렇게 클 수가 없다. N 포탈에서 연재하는 작품 중에 코끼리라는 동물이 제목에 등장하는 만화가 있다. 그 작가분의 예전 작품이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와닿았는지라 요번 작품 역시 열심히 보고 있다. 코끼리라는 제목을 보고 훌륭한 센스라고 생각했는데, 지상에서 가장 강하고 거대한 동물을 사람이 끌어안아야 하는 여러 가지 - 그것이 운명이나, 본인을 둘러싼 환경. 혹 업보나 도그마... 같은 개인이 언젠가는 확립하거나 독립해야 하지만 매우 어려운 - 로 비유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흥미 일변도의 웹툰이 판을 치는 요즘인지라 더욱 그랬을지도. 따뜻하고 감동적인 내용을 부드럽게 풀어나가는 것이 장기인 작가님인데, 연재 중반을 이미 넘어온 만큼 끝까지 건강 유지하며 좋은 내용으로 연재해 주시길 빈다. (물론 그 작가분이 딴지일보 독자일 것 같지는 않다. 무안하게 이 글을 보시는 건 아니겠지.)


 따지고 보면 웹툰이라는 장르가 주는 파괴력은 무시무시하다. 상당한 기획, 구성을 요하며 연재의 경우 시간에도 쫓기지만 잘 짜여지고 그려진 웹툰은 누구나 읽기 쉽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도 유리하다. 더구나 접하기도 쉽다. 각 포탈의 웹툰 페이지나 웹툰 전문 사이트를 찾아가면 그만이며, 유료 웹툰도 아직은 크게 부담스러운 정도의 가격도 아니다. 이래저래 좋은 장르이지만 여전히 포탈에서 연재하는 무료 웹툰을 유료로 돌리는 즉시 돈독이 올랐냐는 대량의 항의댓글에 직면해야 하며, 요번 팝핀 사태에서 보듯 그림을 그리는 분들의 재능을 헐값으로 뜯어가는 자들 역시 여전하다. 이것은 물론 만화만이 아니라 글을 비롯한 많은 창작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리라. 생업을 유지하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의 창작을 하시는 분들이면 몰라도, 아직 많은 어린, 혹은 젊은 친구들은 도전만화란에서, 신춘문예나 문예지 혹은 문학 관련 사이트를 두드리며 그림을 그리고 습작을 한다. 일전에 UMC님이 연예계나 방송 관련, 그리고 프로 게이밍 쪽에도 불합리한 대우에 대해서 제보를 받는다고 (그것은 알기 싫다) 한 적이 있었는데, 팝핀 사태를 비롯한 창작인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다뤄준다면 참 좋지 않나 생각한다. 창작의 어려움 이상으로 댓가를 지불하는 것에 대해서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꼭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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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일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충돌하는 경우가 요즘 종종 생긴다. 주로 시스템을 다루는 나는, 네트워크 담당과는 이야기가 잘 맞는 편이다. 그러나 개발자나 기획자와는 왕왕 회의가 길어지는데, 시스템적인 입장에서 짜기 쉽고 사용하기 쉬운 작은 프로세스들을 모아 하나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 옛날 BSD (Unix 운영체제의 한 갈래이다) 관련 번역문서들을 보면, '고전 유닉스식 철학' 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것이 내 입장인 반면, 저쪽은 조금 큰 툴이나 프로그래밍 언어를 투입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낫다고 이야기한다. 가볍게 처리하면 후임자가 배우기 쉽고 관리하기 쉽다고 주장하면 저쪽은 무거운 쪽의 확장성이 유리함을 이야기한다. 시스템상에서 전자가 아무래도 더 가벼우니 부하가 적다는 의견에, 반대로 시스템의 스펙이 엄청나게 좋아지는 요즘엔 오히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둘 다 틀린 의견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더 효율이 좋은 쪽으로 진행하면 되겠지만. 거기에 보안이라는 문제와 백업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그저 좌충우돌. 팀장님의 머리는 그저 복잡해지겠지.


 회사의 보안 담당자가 자주 이야기한다. '인간이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보안상으로는 강력하다' 이거 참 명문이다. 보안 솔루션을 이중 삼중으로 투입하고, 사용자의 권한을 제한하는 등의 온갖 조치를 하면 할수록 아무래도 안전할 수밖에 없다. 그뤟지만 바깥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기획자나 UX (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의 경우엔 최대한 유저들이 쉽고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쓰는 걸 생각하면, 그리고 안과 바깥이 자주 회의가 길어지고 다툼이 생기고 담배를 같이 피울 일이 많아지며 소주잔을 기울일 일도 늘어난다는 걸 생각하면, (물론 업무가 많이 세분화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은 좀 다를 것이다.) IT의 즐거운 점은 바로 이 개인적 가치관들의 충돌이 더 나은 기획과 기술, 디자인 등등을 요구하게 되고 그러면서 더 좋은 서비스로 발전해나간다는 것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마치 헤겔의 변증법이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덕분에 배울 것도, 알아야 할 것이 앞으로도 넘친다는 것에 안도감과 피곤함을 동시에 느낀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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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hril
2013. 7. 6. 07:21

 물질만능 사회를 살아가며 욕망과 속물됨이 당연하다면, 책이 빽빽하게 꽂힌 서재를 꿈꾸는 나는 나름 고상한 속물이라 할 수 있을게다. 꿈의 발현이 반드시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에 나는 다른 방향을 찾아 서점에 왔다. 이 서점이 사방을 책으로 가득 메운 지성의 바다이며 한가운데에 뜬 섬에서 지적인 이미지를 뿔테안경으로 극대화시킨 지긋한 나이의 주인장이 '도덕의 계보' 같은 책을 심각한 표정으로 읽고 있는, 그런 서점이 아니라는 것에 약간 낙담하면서. 어쨌거나 요즘엔 그런 서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정해진 분류에 따라 구역을 나눠 해당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진열해놓는 걸로 그치지 않고, 한쪽에선 핸드폰 악세사리나 1000피스짜리 퍼즐, 혹은 음반이나 게임 소프트를 파는 코너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선 어린 아이들을 위해 다채로운 색상의 장판을 깔아놓고 놀이기구도 갖춰놓은 구역도 보인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서점 내의 여러 구역을 둘러보았다. 딱히 읽을 책을 정하고 온 것도 아니었고 평소처럼 그냥 눈먼 감이 오는 책을 집어서 읽을 생각이었다. 없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냥 서점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우니까. 소설 코너에서 발길을 멈춘 나는 부디 오늘의 감이 좋기를 기원하면서 천천히 책들을 살펴보며 책장 사이를 어슬렁거렸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집어들고는 한편에 위치한, 서점 내에서 책을 읽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의자들을 비치해놓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전 같았으면 그 자리에 냅다 주저앉아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지만, 퇴근길의 양복 차림은 차마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퇴근시간 이후인지라 대부분의 의자에 주인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빈 의자가 있었다. 얌전히 앉아 가방을 무릎 위에 놓고 책을 펼쳤다.


 활자가 주는 즐거움의 호우로 온 몸이 젖어든 채 몇십 페이지쯤 읽었을까. 이성은 나에게 슬슬 집에 가서 세면과 식사 등등의,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감성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여겨지는 일상의 한 단락을 마쳐야 내일 출근하는 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설득했다. 아쉽지만 평일이라면 그 설득을 무시하기 어렵다. 다만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었기에 구입하기로 했다.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를 향해 걸어가며, 독서삼매에 빠진 주위 사람들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사람이 있었다. 흰색 티에 체크무늬 남방, 거기에 남색 가디건을 걸친 수수한 차림의 여성이었다. 내가 들고있는 책과 같은 책을 보고 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눈을 완전히 가린 빅 사이즈의 칠흑빛 선글라스를 쓴 탓이었다. 서점에서 선글라스라니. 순간 요즘엔 쌍꺼풀 수술을 하면 외출시에 저런 사이즈의 선글라스를 종종 쓴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런 상황에서까지 서점에 와서 책을 읽다니. 대단한 독서욕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빨리 집에 가라는 망할 이성이라는 녀석의 재촉 덕분에 난 그 여성으로부터 시선을 옮겨 계산대로 가서 책을 구입한 다음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지겨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다시 서점을 찾은 것은 이틀 후였다. 구입한 책을 집에서 읽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퇴근 후 예의 그 일상의 한 단락을 마치고 나면 보통은 수면이라는 이름의 단락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한 번에 먹어치우지 않듯, 마음에 드는 책을 조금씩 아껴가며 읽는 소소한 즐거움을 놓칠 수 없다는 고집을 항상 가져온 탓도 있다. 오늘도 서점엔 다행히 빈 자리가 있었고 천천히 의자를 향해 걸어가던 찰나, 이틀 전에 보았던 그 여성이 다시 눈에 띄었다. 일전과 같은 옷차림을 하고, 일전과 같이 커다란 선글라스를 낀 채. 심지어 보고 있는 책도 이틀 전에 보던 - 내가 고르기도 한 - 그 책이었다. 그러다 이 여성의 얼굴이 내 기억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 여성과 최대한 가까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읽던 부분을 찾으려 책갈피를 꽂아놓은 페이지를 손으로 가늠하며, 난 그 여성을 몰래 훔쳐보았다. 내 머릿속 어느 한 구석에 위치한 기억의 상자를 열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러다 묘한 것을 발견했는데, 그녀는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다. 아니, 이틀 전에 그녀가 보던 그 페이지에서 한 페이지도 더 읽은 것 같지가 않았다. 얼굴의 각도를 보아 책에 시선을 맞춘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왜 여기 앉아 있는 것일까. 그와 동시에, 문학소년으로 불리던 고등학생 때가 생각났다. 아마 2학년 때였을 것이다. 그녀는 나와 같은 반, 내 옆자리에 앉았던 짝이었다.



 점심을 먹고 도시락을 갈무리하고 나서 책상 서랍에서 소설책을 꺼냈다. 읽던 페이지를 찾으려는데 누군가 뒤통수를 가볍게 친다. 돌아보니 같은 반 친구들이었다.


 " 이건 무슨 남자놈이 맨날 소설책만 보고 앉았냐? 야, 나가자. 축구하러. "

 " 너희들이나 나가라.. 난 책 좀 보게. 축구는 방과 끝나고 하자. 좀. "

 " 방과 후나 지금이나... 에이. 됐다 임마. "


 어차피 이 시간의 내가 늘상 책만 읽는다는 것을 알기에 친구들은 진즉에 포기했지만, 그래도 가끔식 축구하자고 이야기해주는 것에 고마워하며 다시 책을 폈다. 옆에서 풉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 얼굴을 돌렸다. 내 짝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채로 날 보고 있었다.


 " 문학소년은... 오늘도 여전하네. "


 난 약간 심통난 얼굴로 대답했다.


 " 뭐. 내가 책을 보는 데 불만있어? "

 " 아니... 후후. 남자애들은 보통 점심먹고 나서 자거나 쟤네들처럼 축구를 하니까. 너처럼 소설책 읽는 애는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것도 항상. "

 " 난 그냥 책 읽는게 좋아. 축구는 방과 끝나고도 할 수 있으니까... 너야말로 정말 책 열심히 보잖아. 끝나고도 학교 도서관에 가지 않아? "

 " 응. 어차피 내년에는... 그러니까 3학년이 되면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이 줄어들 테니까. 아니면 아예 없을 수도 있고. 그래서 금년엔 성적에 영향이 없을 정도로만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엔 책만 보고 있어. "

 " 졸업하고 나면 시간이 더 많지 않을까? 왜 그렇게 열심히 읽는 거야? "

 " 난 책을 정독하고 나면, 그 책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해. 그 책을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은 사람의 것이 되는 거지. 소유하는 즐거움이랄까? 되도록이면 많이 소유하고 싶어. 졸업하고 나서도 열심히 읽을 거야.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해. "



 그래. 그런 대화를 했었다. 그 다음에도 뭔가 몇 마디 주고받았던 것 같은데, 대화의 끝에 그 아이가 분명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는 것밖에 기억이 나질 않았다. 졸업 이후 난 그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어쨌거나 기억이 난 이상, 비록 날 잊어버렸더라도 말을 걸고 싶었다. 혹여나 날 기억해준다면 더욱 좋겠지만. 난 가방을 의자 위에 놓고 그녀의 옆으로 가볼까 하여 일어섰다. 순간 저 뒤에서 꼬마아이 둘이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 의자 사이를 난폭하게 뛰며 지나가다 책을 들고 있는 그녀의 팔을 냅다 쳐버렸다. 남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사실은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로 꼬마들이 사라져버린 새에, 그녀는 몸의 중심을 잃고 허우적댔다. 책을 떨어뜨렸고 선글라스도 벗겨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난 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손을 바닥에 짚은 채로 더듬고 있었다. 난 쭈그려 앉은 채 책과 선글라스를 집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손을 펴 바닥을 더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내 얼굴에 가까이 다가왔고 난 흠칫 놀랐다. 그녀의 눈동자엔 초점이 없었다. 아마,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리라. 그래서였나.


 " 여기.. "


 선글라스를 그녀의 손에 가져다 대 주었고 그녀는 그제서야 바닥을 더듬기를 멈췄다. 다른 손에 책도 건네주었다. 그녀는 황급히 선글라스를 다시 썼다.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 고맙습니다. "

 " 별 말씀을요. 그... 다친 데는 없으신지 모르겠네요. "

 " 손목이 조금, 욱신거리는 것 같지만... 조금 쉬면 괜찮아질거예요. "


 아까 급하게 바닥을 짚어서 손목에 충격이 온 것이리라. 이대로 그냥 지나치려니 뭔가 아쉬운 감이 들었다. 사실은 궁금했다. 너무나도.


 " 저... 실례가 안 된다면, 커피라도 한 잔 하시겠어요? 손목도 쉬게 할 겸... "


 약간의 망설임 뒤에 그녀는 승낙했고 서점 안에 있는 작은 카페로 자리를 옮겨 마주앉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가녀린 턱선은 여전했고 붉은 빛을 띤 고운 입술도 변함이 없었다. 학생일 때보다 많이 길어진 그녀의 머리가 더해져, 내가 느꼈던 그녀의 이지적인 이미지는 학창시절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오히려 더욱 진해져 있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 아까는 정말 고마웠어요. "

 " 아니예요.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그 꼬마들이 나쁜 거죠.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


 사실 꼬마들이 자신을 치고 갔다는 사실도 몰랐으리라. 그녀의 얼굴에 약간 쓸쓸한 표정이 지나갔다.


 " 그... 눈이 불편하신건 오래 되셨나요? "

 " 사실은 2년 전만 해도 괜찮았어요. 그러다 희귀질환이라는데... 처음엔 눈 앞이 뿌연 정도였는데. 몇 달만에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지요. " 1)

 " 네에. 사실은 며칠 전에도 서점에 와서 앉아 계신 걸 봤어요. 그런데 들고 계신 책의 페이지를 넘기지 않으시는 걸 보고... "

 " 아, 제가 마지막으로 읽던 책이예요. 시력이 점점 나빠지면서 한 권이라도 더 읽으려고 애쓰다가 이 책에서 결국 멈췄어요. "

 " 책을 원래 좋아하셨나봐요. "

 " 제가 학창시절부터 책벌레였거든요. 제 나이대에 저만큼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녀는 미소지었다. 슬픔 가득한 미소였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녀의 독서량도 줄어들 것이기에. 내 표정 역시 어두워지는 것을 느낀 탓일까. 그녀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짓고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 서점에 자주 오시나봐요? "

 " 네에. 저도 책 좋아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요. 서점에 오는 걸로 즐거움을 삼는 정도지요. "

 " 부러워요. 책을 읽는 게 제 행복의 전부였거든요.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들의 내용이 제 것이라면, 제게 남은 삶은 고작 제가 가진 것들을 소진하며 사는 것일 테니까요. 서점에 와서 책을 들고 앉아 있지만 사실은 계속 삶을 소모하고 있는 거죠. 앞으론 어떻게 살까 싶어요."

 " 인생이 그리 길지 않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지실 만도 하네요. "


 순간 그녀의 표정에 약간의 놀라움과 당혹감이 스쳐갔다. 이내 그녀의 표정은 다시 쓸쓸해졌다. 아차. 내가 실수를 했구나. 그녀는 이내 일어날 채비를 했다. 나로선 그녀의 표정을 돌려놓을 방법이 없었다.


 " 오늘은 정말 고마웠습니다. 전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짚으며 서점을 나서는 그녀를 보고,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애초에 말을 걸지 말았어야 했다. 빌어먹을 잠깐의 감정이 토해낸 나의 이기심 때문에 결국 그녀의 좌절감만 더욱 부풀린 셈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녀는 서점에 나타나지 않았다.


 죄책감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떻게든 그녀를 돕고 싶었다. 그러나 무슨 수로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녀가 앓았다는 희귀질환에 대해 찾아보았다. 완치가 불가능하고 이미 진행이 다 된 마당에 의학적으로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점자책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지만 발행량이 전체 도서의 2% 정도라는 것을 알고 속이 더욱 쓰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은 그 상실한 것을 완전히 되찾지 않는 이상 본래대로 돌아올 수는 없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채워야 할 마음의 빈 자리도 커져간다. 나로 인해 그녀의 좌절감이 더욱 커졌으리라 생각하니 답답하고 미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문득 일전에 산 책을 그날 이후로 전혀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침대에 누워 책을 폈다. 그녀의 입장이 되었다고 상상하고 눈을 감은 채 책을 두 손으로 들고 계속 쳐다보았다. 내가 그녀라면, 이 페이지 이후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학창시절 나누었던 대화의 끝에 그녀가 보여주었던 그 만족스러운 웃음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다 기억이 났다. 그날의 대화가 전부.


 다시 그녀를 찾아 매일 서점에 드나들었다. 며칠째 같은 시간에 왔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열흘 정도가 지났고 주말이 왔다. 혹시 모르니 오늘은 개점부터 하루종일 서점에 있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날 피해 다른 서점에 갔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만약 오지 않는다면 내일부터는 여기서 그나마 가까운 서점부터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에 그녀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폈다. 여전히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다. 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 저... 일전에 뵈었던... 그 사람입니다. 제 목소리, 기억하시나요? "

 " 응? 아. 네... "


 역시 당혹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난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 죄송해요. 잠깐만 제게 시간을 내 주세요. "

 " 아니... 그러니까... 무슨 일로... "

 " 일단 서점 밖으로 나갑시다. 오래 걸리지 않아요. 빨리요. "


 역시 지팡이에 의존해야 하기에, 서점 밖에 있는 벤치에 그녀와 내가 앉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너무나도 좋은 날씨 탓일까. 조금은 진정되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녀의 옆에서, 난 일전에 사둔 책을 꺼냈다. 그녀가 넘기지 못한 페이지를 폈다. 심호흡을 몇 번 한 뒤에, 최대한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진심을 담아 책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 ...혹은 어느덧 지나가버린 한 시간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란 불가사의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비록 형편없는 기억력 탓에 중간중간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빠진 것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인생은 서로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 2)



 그녀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 기억하고 있었구나. "

 " 너무 늦게 기억이 났어. 미안... "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지난 날 그 만족스러웠던 표정 그대로였다.







 " 그런데 말야. 그렇게 길지 않은 내 인생에서, 만약 책을 못 읽게 되면 어쩌지? 난 상상할 수가 없어. "

 " 책을 꼭... 뭐... 눈으로 봐야 돼? 귀로 들을 수도 있잖아. "

 " 그러네. 그럼, 서로 읽어주면 되겠다. 그치? "















p.s 빗소리 덕인지 오늘은 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딴지에도 빗소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시려나요?


1) 레버씨 시신경 위축증.

2) 김연수 - '세계의 끝 여자친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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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hril
2013. 7. 6. 07:20


  그는 표정 없이 생각보다 꽤 긴 합정역 안을 천천히 걸었다. 6호선으로 환승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합정역에서 내린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그는 출구를 나타내는 안내판을 계속 눈으로 좇으며 걸어야 했다. 3번 출구로 향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 역 바깥으로 나갔다. 어두운 밤하늘에 맞서 출구 바로 옆에 있는 동물병원에서 나오는 형광등 빛이 없었다면, 적막이라는 단어가 제대로 어울릴 터였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그녀를 만나기로 했고, 그러니 기다려야 했다. 보도 한가운데에 서 있을 수는 없었기에, 그는 기다릴 장소를 찾아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해 보이는 남자 둘이 그의 시선을 스쳐갔다. 동물병원의 유리창 앞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던 둘 쪽으로 걸어가서, 그는 역시 두 남자의 간격에서 두 배 정도 옆으로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자, 약속 시간인 9시까지는 대략 3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남자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냈다. 담배를 한 개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담배를 다시 담뱃갑 속에 넣고 라이터와 함께 주머니에 넣었다. 왠지 그녀에게 만나면서부터 담배냄새를 풍기기 싫었기 때문이다. 풍겨도 어디건 들어가서 풍겨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뚜렷한 이목구비, 특히 빨려 들어갈 듯이 진하고 맑은 그녀의 눈. 언뜻 여리고 가냘파 보이지만 그 가운데 적당한 볼륨을 잃지 않은 - 아마도 상당한 자기관리가 뒷받침되었으리라 - 그녀의 몸매. 그러나 그가 가장 매혹되었던 점은, 이지적인 그녀의 이미지에 걸맞는 부드럽고 신중한 언행과, 화제의 내용과 수준에서 느껴졌던 그녀의 지성이었다. 표정 없던 그의 얼굴에 미미한 미소가 흘렀다.


  그의 표정에서 미미한 미소를 지우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출구에서 울리는 발걸음 소리였다. 조금 후 쇼츠에 반팔 셔츠를 걸치고 헌팅 캡을 쓴 남자가 출구 밖으로 나왔다. 남자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그 역시도 누군가를 기다릴 자리를 찾는 듯했다.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세 남자와 일렬 횡대로 서지 않고 동물병원 맞은편, 도로 쪽에 위치한 작은 버스정류장 유리 앞을 선택했다. 다른 셋과 마주보는 위치였다. 남자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 뒤,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호응하듯 맞은편에 서 있는 남자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담배를 꺼내지 않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다른 남자들을 둘러보았다. 세 남자도 각기 다른 남자들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무도 말은 없었지만, 넷 모두 같은 입장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자대가 어디로 배치될까 전전긍긍하는 훈련소 동기들처럼.


  그는 가장 끝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아마도 이 남자가 이 장소에 맨 먼저 왔으리라. 감색 양복에 옥스포드, 검정색 브리프 케이스를 든 그 남자는, 장미를 한 송이 포장하여 들고 있었다. 장미를 든 손을 등 뒤로 감추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나름의 깜짝 선물로 준비해온 듯 했다. 저런 자세로 오래 기다리면 꽤 피곤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괜한 참견은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자신의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를 보았다. 7부 코튼 팬츠에 로퍼를 신고, 폴로 티셔츠를 단정하게 입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비주얼로 따지자면 이 남자가 가장 훌륭했다. 맞은편에 서 있던 세 번째 남자는 쇼츠에 반팔 셔츠를 매치했는데, 좋게 말하면 활동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껄렁껄렁하다는 게 그의 느낌이었다. 문득 자신이 검은색 진에 회색 스니커즈, 어두운 적색/청색의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다는 게 떠올랐다. 굳이 비주얼로 따지자면, 자신이 가장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로가 머리 속에서 서로를 둘러보며 품평을 하는 동안, 그는 문득 시간이 꽤 지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다시 확인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자주 시간을 확인해 봐야 오히려 답답해진다고, 경험이라는 녀석이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첫 번째 남자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는 꽤 정중한 차림새에 걸맞지 않게 상당히 상기된 얼굴이었다. 숨을 약간 가쁘게 쉬는 것을 보니 꽤 긴장한 듯 했다. 그리고 그 긴장을 깬 것은 다시 출구에서 울리는 발걸음 소리였다. 또각 또각 울리는 하이힐 소리. 네 남자는 동시에 서로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3번 출구로 향했다.


  역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커리어우먼이라는 단어에 딱 어울릴 이미지의 검정색 여성용 정장을 입은 여자였다. 동물병원 쪽으로 여자가 시선을 돌리는 동시에, 양복을 입은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갔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서, 남자는 여자에게 꽃을 내밀었다. 여자는 놀라움과 감격스러움의 겹침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는 서로 팔짱을 끼고 둘은 걷기 시작했다. 세 남자 사이를 통과하며, 첫 번째 남자는 격려와 만족이 섞인 얼굴로 세 동기들을 둘러보았다. 한 남자는 하늘을 보며, 또 다른 한 남자는 옆을 보며 애써 외면했다. 그는 표정 없는 얼굴로 첫 번째 커플을 쳐다보았다.


  둘의 모습이 어둠 속에 묻히자, 그를 제외한 남자 둘은 다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고 담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표정과는 달리 머리 속에선 후회가 그를 몰아붙였다. 이왕이면 좀 더 괜찮은 옷을 입고 나오는 게 좋지 않았을까. 옷이 날개라는 것은 절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 정도면 그냥 무난하겠다고 생각하고 덜렁덜렁 나온 것인데. 그와 동시에 일주일 전, 그녀와의 첫 만남도 떠올랐다. 어쩌다 보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알게 되었고 실제로 만나게 되었지만, 그것은 어쨌거나 소개팅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가벼운 식사 약속이었다. 거기에, 그녀는 그가 표정이 없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표했던 기억이 났다. '밝은 표정을 지으면 훨씬 좋을 것 같네요.' 같은 뉘앙스의 말이었던 것 같다. 후회는 꼬리를 물고 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것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서였다. 그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한, 깔끔한 이미지의 여자가 그의 옆에 있는 남자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정작 그 남자는 딱히 반갑지 않은, 하지만 미묘한 미소를 띈 얼굴로 여자를 맞았다.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처럼 남자는 긴장하지도, 상기되지도 않았다. 두번째 커플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손을 잡고, 보도 가운데로 두 남자 사이를 지나갔다. 두 번째 남자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당연하다는, 어찌 보면 교만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었고 거기에 알듯말듯한 미소를 덧붙여 두 동기에게 던졌다. 다른 남자는 역시 옆을 보며 모른체했고, 그는 약간 고개를 숙여 시선을 땅으로 향했다.


  맞은편의 남자는 담배를 다시 꺼내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세 번째 남자는 왠지 안절부절 못한 것 같았다. 뭔가 약간 화가 난 얼굴로 혼잣말을 하는 것이, 8시 30분에 만나기로 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는 담배 대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시간을 확인하니 8시 55분이었다. 그녀와 만나기로 한 시간까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는 약속 시간에 절대 늦지 않으리라. 그러나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긴 커녕 조금 급해졌다. 두 번째 남자의 건방져보이는 얼굴 탓이었을까. 기분이 약간 불쾌하기도 했다. 훈련소와 자대의 차이가 뭐 얼마나 된다고.


  그러다 보니 그는 불쾌했지만 자신을 돌아봐야 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신은 얼마나 매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판단해야 했다. 완벽에 가까운 그녀에게 감히 애정을 품으려면 그 자신부터 변해야 되겠다는, '진부' 라는 제목의 자기계발서 같은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다시 한 번 오늘의 복장에 대해 후회가 밀려왔다. 관리를 하지 않아서 차츰 나오고 있는 자신의 배가 미워졌다. 표정 한번 밝게 짓지 못하고 어색함과 무표정으로만 일관했던 자신의 얼굴에 실망했을 그녀를 상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는, 흔한 멘토들의 단골 소재거리인 긍정의 에너지를 어거지라도 끌어내려 머리속에서 애를 썼다. 일부러 얼굴 근육을 움직거리며 눈을 크게 뜨거나, 조커처럼 입을 옆으로 쫙 벌려보기도 했다. 밝은 표정의, 건장한 체격의, 지성과 유머를 가진 자신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났다. 밝게 웃는 얼굴로 그는 그녀를 맞았다. 긴 대화간에, 그는 그녀의 웃음과 진지함을 모두 이끌어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홍대의 밤거리를 걷는 와중에 그는 문득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그는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좋아한다고 말했다. 약간의 침묵 후에, 사랑스러운 얼굴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녀를 꼭 안았다. 그녀의 부드러운 품과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기에 그만 취해버렸다.


  그의 취기를 한 순간에 깬 것은 발걸음 소리였다. 역 안에서 메마른 거리를 향해 유난히 크게 울려퍼지는 발걸음 소리. 잠깐 상상에 빠지긴 했지만 지금쯤은 분명 9시가 되었을 것이고, 그녀가 이제 도착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그는 차분한 얼굴을 그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괜히 자신의 한심한 상상의 편린이 혹여나 그녀에게 전달되면 어쩌나 싶어 그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동시에 그와 남자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출구로 시선을 향했다.


  출구로 얼굴을 내민 것은, 그가 모르는 여자의 얼굴이었다. 그보다 나이가 꽤 적어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민망스러울 정도로 치마가 짧았기에, 그는 눈동자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던 세 번째 남자는 담배를 털어버리고 꽁초를 땅에 휙 버린 뒤, 그 여자에게 다가가 힘껏 껴안았다. 여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남자의 품에 안기며 계속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온통 껴안고 입맞춤을 퍼부으며 사랑의 밀어를 거리 위에서 속삭이는 민폐를 그에게 실컷 끼친 후에, 세 번째 남자는 한쪽 팔로 여자의 허리를 감은 채 천천히 그를 지나갔다. 마치 화투를 치다 먹을 것이 없어 흑싸리 껍닥을 내던졌는데, 뒤집어 광을 먹어 운 좋게 삼광으로 나버린 듯한, 3점짜리 비릿한 웃음을 지은 채로였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마지막 커플이 자신을 지나가고 나서, 그는 동물병원 유리창에 등을 기댔다. 힘 빠진 얼굴로 그는 가쁘게 숨을 몇 번 쉬었다. 그리고 얼굴이 일그러진 채,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려는 순간, 그는 천천히 담배를 입에서 뺐다. 기댔던 몸을 일으키며 담뱃갑에 담배를 집어넣고 라이터와 함께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며 다른 손으로 자신의 등을 털었다. 전화가 왔기 때문이었고, 물론 그녀의 전화였다. 그녀는 3번 출구 반대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통화를 마친 후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출구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그는 머리를 좌우로 몇 번 흔들었다. 얼굴 근육을 다시 움직거렸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몇 번 문지르기도 했다. 멀지 않은 시야의 끝에, 손을 흔드는 그녀가 보였다. 그 역시 손을 한 번,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그녀와 가까이 마주섰다. 그녀는 미안함이 섞인 - 사실은 몇분 늦지 않았는데도 - 얼굴로 말했다.


  " 늦어서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어요? "


  지난 주와 똑같이, 표정 없는 얼굴로 그가 대답했다.


  " 괜찮아요. 저도 방금 왔습니다. "












p.s 처음 올린 텍스트에서 약간의 퇴고를 거쳤습니다. 띄어쓰기하고 맞춤법은 여전히 절 괴롭히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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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hril
2013. 4. 3. 19:45

 일요일이었던 어제, 친구의 결혼식 참석차 강남에 있는 모 예식장에 다녀왔다. 금년 들어 지인들의 결혼이 잦다. 평균 혼인 연령이 서른을 훌쩍 넘겨버린 요즘같은 때에, 나이가 차버린 이유도 있겠지만 시간이 더 흘러도 경기가 풀린다거나 복지가 좋아진다는 등의 희망이 없기에, 빨리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술자리에서의 지인 이야기를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결혼식 날 동원할 수 있는 친구들을 학연, 지연 등등 여러 분류에 따라 미리 만난다. 술 좀 얻어마시는 대신 결혼식장에 와서 자리를 채운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괴테 할아버지가 그랬나, 받고 싶으면 먼저 주라고. 어젠 다행히도 괴테 할아버지의 격언을 충실히 따른 감성 넘치는 친구들이 많았다. 강남의 꽤 으리으리해보이는 예식장은 화창한 날씨를 에너지로 삼기라도 하는 듯이, 거대한 위용을 유난히 뽐내며 꽤 많이 참석한 나와 친구들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예식장 앞을 너구리굴로 만들며 서로들 안부를 묻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거나 주식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여친 없냐? 같은 당연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올라가봤더니 남자들 뿐이더라, 라는 한탄부터 저녁에 술 마시러 어디로 갈까 같은 퓨처리즘의 선구자 같은 녀석도 있다. 그나마 모바일 TCG 게임에 정신없는 녀석이나 보험을 팔겠다는 녀석이 없어서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보험도 한개 남기고 다 깨버린 참이라.



 예식이 시작되면 어디선가 많이 보았고 앞으로도 많이 볼 장면들이 계속된다. 혼인서약도 하고 근엄한 주례사에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축가의 퀄리티에 대해 논하다 보면 예식이 끝난다. 명색이 친구니 신랑 뒤에서 사진 한장 박고, 귀찮은 타이를 거칠게 풀러서 - 왜 목이 불편하게 타이를 두 번 감았을까 후회하는 촌각도 빼놓지 말자 - 가방에 쑤셔넣은 뒤에 식당으로 내려가 뷔페에서 배를 채우고 맥주를 몇 잔 마시고 나면 친구로서의 임무를 완수한 기분에 뭔가 뿌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당사자에게나, 친구들에게나 생각보다 짧았다. 아무리 진심없는 정형화된 세상에 맞춰 산다고 해도 마음속으로나마 한 번 진심으로 빌어줘야지. 친구야, 오늘 날씨만큼 행복해라. 언제나.




---




 전날도 밤에 일했으니 피곤하고 해서, 빨리 귀가해서 자고 싶었지만 좋은 날씨는 인간의 모든 자유 의지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 그냥 집에 가기 아까워서 강남대로를 터벅터벅 걸었다. 일요일 낮인데도 사람이 어찌 그리 많은지. 문득 삶이라는 이름의 거리와 묘하게 오버랩되며 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내 눈에 각인되는 것은, 단지 내가 피곤한 탓이겠지. 시야가 흐려진다.



 누군가는 천천히 걷고 누군가는 뛰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어떤 사람은 차를 타고 더 빨리 가려 안달복달이다. 드물게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우리를 비웃으며 날아가는 자도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뒤에서 부모가 밀듯이 재촉하는 통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억지로 뛰고, 젊은 친구들은 어떻게든 주위 동기들을 제쳐서 조금이라도 더 앞에 가기 위해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아예 걷지도 않고 제자리에 서 있거나, 거리 곳곳에 나 있는 구석의 으슥한 샛길에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사실은 그들이 오히려 부럽다. 으슥한 샛길 저편에 뭐가 있는지, 나로선 알 수 없으니까.



 공정하게, 라는 말은 적어도 이 거리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공평하고 공정한 시작을 외치는 소리는 어떻게든 이 거리의 레이스에서 이기기 위해 내지르는 채찍질 소리에 묻혀진 지 오래다. 그나마 날 때리는 채찍이 없어서 다행이다. 남자 한 몸 건사하며 이 거리를 걷는건 그나마 쉬운 일이다. 딸린 식구가 많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간신히 온몸의 힘을 짜내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다. 다행히도 저들의 뒤에서 혹은 옆에서 부축해주거나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나마 이 거리가 유지되는 유일한 버팀목이겠지. 모두가 쓰러지고 포기하면 레이스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니까.



 시야가 회복되며 다시 강남대로로 돌아오니 교보문고 옆에 흡연장이 보인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신에게 감사하며 담배를 물었다. 이 거리는 강남역에서 시작하여 신논현역에 도착하면 일단 끝나지마는, 삶이라는 이름의 레이스는 꽤 길다. 그나마 우리에게 공평한 것은, 이 거리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오늘이 만우절이란다.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날이란다. 피식 웃었다. 우린 항상 속이고 속으며 산다. 사람에 속고 시대에 속는다. 힘들지만 행복한 척을 한다. 사실은 좋으면서 싫은 척을 한다. 만우절이라는 날을 고안한 자는 참으로 박애주의자다. 평생을 속고 속이는 게 삶일진대, 그걸 1년에 비록 하루이지만 용서가 되는 날을 만들다니. 이런 인간애 가득한 사람이 또 있을까.



 트윗을 보기 위해서 트위터에 접속하고, 여기저기 사이트에 들려보고 포탈에 접속해서 웹툰도 몇 개 본다. 요즘은 어쩌면 이리 좋은 내용, '일방적으로' 따뜻한 내용의 트윗과 글과 웹툰이 넘쳐나는 것이냐. 방송은 또 어떻고.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따뜻했나. 몇몇 작가들은 자신이 천사라도 되는 양, 아니 천사라고 해도 너희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거야. 천사를 그린 옛 그림엔 그림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림자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인데. 어두운 면이 없는 자는, 어두운 면을 모르는 자는, 접하는 모든 것의 절반을 잃고 있는거다. 아마도, 속고 있는 게지. 삶의 절반을.



 그렇다고 해도 하루 정도는 속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지나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여긴다. 부디 오늘만은 '선의의' 거짓말만 하기를 기대한다. 누구에게 기대하는지는 비밀. 물론 기대해봐야 별볼일 없다는 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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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hril
2013. 4. 3. 19:44

 야간에 일한다는 것은, 늦은 시간에 창밖을 바라보며 흔히 빠지게 되는 '우울한 감상' 이라는 이름의 행복과, 인간에게 주어진 생활 사이클을 거스르는 자에게 내려지는 '과도한 피곤함' 이라는 징벌을 동시에 주곤 한다.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1년의 2/3 정도를 야간에 근무하는 나로선 오후 5시쯤 카톡에 남겨진 절친의 메시지에 한시간 늦게 대답해주는 정도는, 나름 친구를 배려한 친절한 대응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



- 자냐


- 이제 깼당 왜


- 7시 30분 000 집결

- 이상 통신끝



 해석컨대 월요일날 저녁에, 그것도 근무지가 분당인 녀석이 당산동에 위치한 술집에 가서 마시자는 이야기. 아마 또다른 절친 두 명도 오겠지. 그러나 놀라지 않은 것이, 가자는 술집은 절친들과 자주 가던 단골집이고, 애초에 나를 제외하면 - 이 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 술꾼들이라 요일을 가리지 않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다들 일에 채여 바쁘고, 거기에 모두 솔로들이라 일상의 변화가 별로 없기에 슬프거나 괴로운 일로 보자는 것은 아닐 터이다. 아마도 좋은 일이 생겼거나 그냥 술 생각이 났겠지.



 다른 녀석들을 기다릴 것도 없이 술집에 들어섰다. 흔히 볼 수 있는 소주마시는 술집이지만 꽤나 구식의 낡은 상과 옛날 스타일의 색 바랜 벽지가 어우러져 꽤 지저분해 보여도 나름 친근함을 더하는 이 술집. 안주가 아주 싸고 맛이 괜찮다는 칭찬은 덤. 들어가니 이모가 반갑게 맞는다.



- 어서 온나! 오늘은 몇명이고?


- 다 와요 이모. 저까지 네 명.


- 웬일로 다 모이네? 그래 저기 앉아라~



 저기 앉아라, 에서 끝이다. 이 술집은 술과 물을 가져온다던지, 기본안주인 단무지와 무 장아찌를 퍼온다던가, 수저와 술잔을 가져오는 등의 서비스가 모두 셀프다. 단골의 경우에는 주문 내역을 이면지를 대충 잘라서 종이철에 고정시킨 빌지에 적는 것까지 셀프다. 참으로 자유로운 술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서빙을 이모 혼자서 다 하시는 탓이다. 어쨌거나 난 불만이 없다.



 그 사이 도착한 친구 한명은 수저와 잔을 세팅하고, 또 한명은 접시에 단무지와 무 장아찌를 담는다. 난 쇼케이스 위에 붙여진 '한 테이블당 최소 2병' 이라고 적힌 정겨운 종이를 힐끔 바라보며, '그야 물론...' 하고 혼잣말을 던지고 참이슬 한병과 맥주를 꺼냈다. 그나저나, 술집에서 안주를 고르는 일은 고등학생이 첫 담배를 고르거나 짝사랑하는 이성에게 보낼 첫 카톡 메시지를 가다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이 술집은 그리 안주의 종류가 많지 않아서, 손님에겐 의도하지 않았던 편의를 제공하는 셈. 늘상 먹는 계란말이와 순두부찌개를 부탁했다.



 조금 지나서 친구 넷이 다 모였다. 아니나 다를까, 날 불렀던 친구의 연봉이 조금 올랐다고 한다. 나같은 하류인생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고만고만한 회사를 다니며 한달 월급에 목매는 사람들에게 연봉인상만큼 술을 불러오는 단어가 또 있으랴. 오늘은 내가 쏜다, 같은 호기로운 말이 터져나와도 오늘은 용서다. 그렇고말고.



 욕인지 축하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이 몇 마디 오고간 후 흔히들 술집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시작되었다. 각자의 취미거리나 흔한 누님 욕이라던지 우리 모두 솔로를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을 공유한다던지. 이야기 중에 계란말이를 뭉텅 잘라서 먹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도 꽉 찼고 꽤나 왁자지껄하다. 살다가 삶의 궤적이 꼬리처럼 길어질 때면, 사람들은 으레 그것들을 모아서 소주 한 잔에 담아 입 속에 털거나, 혹은 담배불에 태워 연기로 날려 버린다. 그렇게 술과 담배는 우리네 삶을 위로한다. 국민건강 운운하면서 담배값과 술값을 대폭 올리자고 지랄하는 자들은, 대략 인간 영혼의 말살자라 불러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내 입장에선 그렇다.



 손님들이 꽉 차고 모든 테이블에서 주문도 일단 끝나 조금 여유가 생긴 것일까. 이모가 다가온다. 



- 얼마나 먹었나~?


- 에~ 소주 세병하고... 맥주 두병, 하고... 계란말이하고... 순두부하고...


- 요기까진 이모가 산다. 알았나?


- 잉!?



 몇년 동안 이 술집에 오면서 서비스 안주라던지 하는 건 처음인데.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한달 전쯤, 친구놈 생일이어서 여기서 한잔 하다가, 어쩌다 보니 이모도 생일이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다. 냉큼 밖에 나가서 근처 빵집에서 작은 케이크를 사와 안겨드렸다. 이모는 이런걸 왜 사오냐고 역정 아닌 역정을 냈지만, 그래도 안 받지는 않으시고 주방으로 휙 가지고 들어가셨다. 누가 마산 아지매 아니랄까봐... 아마도 그 때 이후로 계속 마음에 걸리셨나보다.



 시간이 지나고, 술이 쎄지 못한 나는 이미 얼굴이 꽤 벌개졌다. 2차를 가러 일어나기로 한다. 친구가 계산을 한다. 인사를 해야지.



- 들어갈께요 이모~


- 그래 가라. 앞으로는 그런거 절대 사오지 마라. 이모는 니네 그냥 자주 와서 술만 많이 마심 된다. 알았나?


- 하하. 네에.



 인사도 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우리를 바라보며, 이모가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한마디를 더 하셨다.



- 그날 잘 먹었다. 고맙데이~



끝내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마음을 들킨다는 것, 바로 이런 것이겠지. 술 탓인지 맛있는 계란말이 탓인지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결국 2차는 내가 쏘게 되었고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아마도 내가 다른 데 정신팔려있는 동안 친구들이 내 맥주잔에 몰래 소주를 꼴꼴꼴 부어넣은 것을 모른체한 덕분이겠지. 조만간에 또 마시러 가야겠다. 이번에도 역시, 좋은 일로 마시게 되길 바라면서.











참고로 이 술집의 계란말이는 정말 싸고 양도 가격 대비해서 정말 많은데,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워 사진 한장 던져본다.






IMG_0151.JPG 


이게 2천원. 저 담배갑은 반명함판 사진보다 약간 크다. 어쨌거나 괜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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